7월16일, 비가 참 많이도 내린 날이었다. 2년만에 아미산 정토사로 가는 길은 만개한 연꽃으로 장관이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연꽃과 연잎들은 푸르름과 생기, 고매한 자태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빗방울을 따라 이리저리 춤을 추는 연잎을 보는 일은 흥겨웠다. 큰비도 연잎을 적시지 못했다.
열흘 뒤인 8월2일로 예정된 ‘백련사랑연꽃축제’ 준비로 스님은 많이 바쁘신 듯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2박3일코스 주지교육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지만 1년에 한 번 열리는 교육에 빠짐없이 참가하는 것은 승가 전체의 룰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요, 빠른 속도로 변하는 사회의 흐름을 이해해 사람들에게 필요적절한 도움을 주고싶어서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연꽃축제도 그런 마음에서 시작했다. 해를 거듭하며 한층 내용이 풍성해지고 있는 연꽃축제는 지난해에 이어 청소년을 위한 비보이ㆍ댄스ㆍ비트박스ㆍUCCㆍ사생대회를 연다. 알엔비(R&B) 가수들의 감미로운 노래와 매혹적인 밸리댄스도 선보일 예정. 본무대인 백련문화제는 2일 저녁 8시부터 시작되는데 법고와 가요, 시낭송, 연주 등이 이어진다. 2일부터 이틀간 연꽃체험과 토산물 직거래장터도 이곳에서 열린다.
“당진에는 문화의 토양이 너무 약해요. 지금도 모든 것이 산업화에 밀리고 있죠. 하지만 머지않아 이 굴뚝들을 사람들이 거부할 날이 올 거예요. 아토피, 두통, 우울증에서부터 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병들이 자연생태적인 삶의 파괴로부터 오고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기 시작했거든요. 그때가 되면 공장들은 또 처치곤란한 고철더미가 될 테지요.”
청소년에게도 입시를 위한 경쟁만이 건전한 것으로 허락되고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그들만의 문화는 ‘생각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풍토가 안타까워 스님은 비보이와 비트박스를 연꽃축제 청소년문화제의 프로그램으로 넣었다. 아이들이 신나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학생은 이메일로 감사의 뜻을 전해오기도 했다. 비보이를 하고 싶었는데 당진에 적절한 기회도 무대도 없어 결국 다른 지역으로 떠나왔다는 그 학생은 지금이라도 당진에 그런 무대를 만들어주신 스님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몇 년전부터 마을 경로잔치를 열고있는 것도 어르신들께 생활의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서였다. 재작년 당진에 제1호 지역아동센터를 개설해 방치되는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한 것도 아이들의 행복을 바란 때문이었다. 4년전 정토문화원을 통해 다도문화와 사찰음식문화를 보급하기 시작한 것도 팍팍한 사람들의 삶에 윤기를 더해주고자 함이었다.
“그 가운데 몇가지는 이제 많이 보편화돼서 굳이 제가 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늘 새로운 것, 필요한 것 중에 가능한 것을 지역에서 시작해 보급해야죠. 그게 선각자의 일 아니겠습니까?”
스님은 승(僧)자가 ‘사람:인(人)’과 ‘일찍:증(曾)’의 뜻이 모여 ‘일찍 된 사람, 즉 선각자’의 뜻을 지녔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승려를 포함한 모든 성직자는 선각자로서 병들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자신이 받은 것을 더 크게 사회에 돌려주는 걸 자신들의 몫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국민의 촛불문화제에 호응해 천주교와 불교, 개신교에서 시국예배와 시국법회를 연 것은 국민을 보호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한 정당한 노력이었다고 말했다. 나아가 교회, 혹은 사찰은 지역의 문화와 교육, 사회복지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작은 사람들의 정성으로 낸 헌금과 시주를 보다 적절하고 유익한 복지프로그램으로 바꾸어 더 크게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바로 종교시설들이 해야할 몫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시골동네를 보세요. 동네는 비어가는데 종교시설은 많아지고 점점 더 커져요. 종교시설이 성장하는 만큼 사람들이 사는 집도 커지고 사람들도 행복해져야지요.”
스님은 시골동네의 적막함과 사람들의 가난이 가슴아프다. 그리고 그 가난에도 불구하고 점점 늘어가는 종교시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오지 않는 복지혜택이 가슴아프다.
“한달간 대만을 견학한 적이 있어요. 그곳 사찰들은 1사(寺) 1법인 원칙에 따라 학교법인이든, 의료법인이든, 노인복지법인이든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해 운영하는 것을 철칙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서도 교육ㆍ의료혜택과 함께 정신적인 위안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곳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죠. 그것이 종교계의 당연한 책임 아니겠어요?”
“더구나 21세기에는 문화가 종교라는 말도 있어요. 서구에서는 교회와 성당이 비어가고 있어요. 왜냐하면 이제 사람들은 훌륭한 복지공간과 창의적인 문화예술공간에서 행복과 꿈, 사랑을 키우며 살고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훨씬 더 크고 실질적인 인생의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모처럼 내린 장맛비 덕에 얻은 휴식시간. 비도 멎지않고 이야기도 끝이 없다. 스님은 올 4월 출간한 책을 보여주셨다. 『백련으로 만드는 사찰음식-몸과 마음의 근심을 덜어주는 138가지 백련요리』였다. ‘연’의 효능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이 필요없을 정도다. 하지만 스님의 노력은 ‘연’을 가꿔 대안농업의 길을 찾는 농심(農心)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기와 물, 환경, 먹거리... 좀처럼 오염에서 벗어날 길을 못찾고 있는 시대에 사람들이 ‘백련’으로 차도 끓여마시고 음식도 해먹으며 몸에 쌓인 독성을 씻어내고 그나마라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길 스님은 바란다.
백련요리집에 스님이 쓴 글을 보면 그 마음이 읽힌다.
<백련은 모든 음식에 궁합이 맞는다. 백련은 함께 조리되는 모든 재료의 특성을 살려주면서 맛은 한층 순하고 부드럽게 하며 영양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연에는 지방분해 효능이 있어 육류요리에서 육질을 부드럽게 해준다. 따라서 백련요리를 먹으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산란하고 번민하는 마음이 안정을 찾게된다. 온갖 질병과 중독으로 인하여 생명의 존엄성, 삶의 가치가 상실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백련화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자연생태를 정화하는 큰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곧 부처의 화현과 같다.>
선오스님
서산 출생 / 운산초·대철중·호서고 졸업 / 1982년 해독스님을 은사로 출가 / 삼선승가대학, 중앙승가대학 졸업 /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불교사회복지학과 수료 / 당진군 아미산 정토사 주지 / 2000년 허브차 개발로 미국 FDA승인 / 2001년부터 백련요리 연구하며 시연ㆍ강의 / 2008년 『백련으로 만드는 사찰음식』 출간 / 법보신문에 <선오스님의 근심을 더는 108백련요리> 연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