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할과일상

6.25 사변 그때의 생활 사진

산과자연 2008. 11. 24. 13:16

6.25 사변 그때의 생활 사진

원조 금순이?  (↑)
6.25전쟁이 터지자 생활필수품을 한보따리 싸서 머리에 인체 아기를 업고      
피난가는 이 젊은 새댁 사진은 전쟁 발발 직후 발행된
미국 LIFE잡지(1950년 7월 10일자)에    
전면 크기로 실렸다.



어른들은 왜 싸울까? (↑)
전투 중인 미군 아저씨들로부터 철모를 얻어쓴       
두 꼬마 아가씨가  대포 소리가 너무 무서워 귀를 막고 있다. 난리통에    
부모를 잃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유명한 사진기자 David D. Duncan이
찍은 보도 사진이다



이게  유토피아? (↑)
인천 상륙작전이 끝난 뒤 한 해병이 파괴된 인천 시내를 순찰하다가 어린  
아이와 만난다.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행운아들이다. "유토피아"(이상향)이라는  다방 
       간판이 폐허가 된 거리 풍경과 아이러니칼한 대조를 이루고있다. (미국 국립 문서보관소 사진)



"피난을 가더라도 갓은 써야지"   (↑)
미군 찦차에 실려 두 손자와 함께 피난 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있는 사진인데, 사진 설명을 보면, 중공군과 전투가 있으니 동네를      
떠나달라는 미군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동네  이장인 이 할아버지가 피난 가기를 거부, 할수없이 찦차로
 모시고 가는 길이라고 적혀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군인은 북쪽으로, 피난민은 남쪽으로  (↑)
6.25가 터진지 열흘이 지나서 미군은 처음으로 오산         
죽미령에서 인민군과 싸웠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계속 남하하는 북한 침략군을 저지하기 위해 북
으로 행진하는 미군들과 그 정반대 방향으로 피난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겁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탱크도 무섭지 않은 아이들  (↑)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탱크가 지나가도      
마차가 지나는것 처럼 무관심한 어린이들.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식량
구하러 간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아줌마는 강하다!  (↑)
머리엔 무엇인가 잔뜩 이고 지팡이를 짚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두 아줌마...아마도 식량을 구해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 것이다. 길 옆에서
는 미군들이 대포를 쏠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엄마는 위대하다   (↑)
피난길에 걸어가면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           
이 아기가 지금은 56세쯤 되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8순 할머니가 된 어머니를
잘 모시고 살고 있을 것이다.   (LIFE 잡지 사진)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
 북진하는 탱크에 방해가 될세라 얌전히 길 한쪽에 한줄로 서서
걸어가는 피난민 대열. 자세히 보면 젊은 사람은 없고  노인들과 아녀자들 뿐이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헬로! 땡큐!  (↑)
미군으로부터 초컬랫을 받고있는 어린이.  처음 보는 것이라
 과자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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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기간동안 인민군과 좌익에 의해 학살 당한 민간인은 총 122,799명(‘대한민국통계연감’, 1952년 발간)에 이른다. 위 사진은 퇴각하는 김일성의 지시로 학살당한 함흥 주민들의 모습으로 사진에 보이는 동굴에서만 300여 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사진출처 : 美 국립문서기록보관청)




▲ 함흥에서 학살된 민간인 시체를 우물에서 건져 올리고 있는 국군의 모습





▲ 6.25 전쟁 당시 함흥시에서만 모두 1만 2,000여 명에 이르는 무고한 양민들이 퇴각하는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학살당했다. 위 사진에서 보는것처럼 인민군의 학살에는 남녀가 따로 없었다.
(사진출처:美 국립문서기록보관청)


6·25를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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